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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재글 왜 나는 희생해야 하나? (요나 1: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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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media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51회   작성일Date 25-08-23 16:46

    본문

    조원태 목사의 '요나서로 묻는 17개의 질문'

    왜 나는 희생해야 하나? (요나 1:11-16) 

     

    밤은 칼날처럼 내려앉았다. 물살은 성난 짐승처럼 뒤척였고, 배는 곧 허물어질 듯 신음했다. 선원들의 눈동자만이 언어였다. 정적은 팽팽했고, 물살도 숨을 참았다. 그 틈을 가르며 누군가 입을 열었다. "우리가 너를 어떻게 하여야 바다가 우리를 위하여 잔잔하겠느냐."(11절) 

    요나의 눈빛은 바다처럼 출렁였다. 격랑의 무게가 뼛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는 입술을 열었다.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12절) 그 말은 물처럼 흘렀고, 돌처럼 가라앉았다. 

    선원들은 물결의 등을 밀치며 끝까지 버텼다. 그들은 요나를 내치지 않으려 애썼다. 신을 알지 못하면서도, 자비를 놓지 않았다. 그러나 파도는 등을 휘었고, 하늘은 더 깊은 짐을 쏟아냈다. 그들은 하늘을 향해 절규했다. "이 사람의 생명 때문에 우리를 멸망시키지 마옵소서."(14절)

    요나는 들어 올려졌다. 더 이상 그는 한 사람이 아니었다. 마침내 바다로 던져졌고, 파도는 멎었다. 그후 믿지 않던 이들 입으로 기도했고, 한 사람이 꺼진 자리에, 믿음이 피어났다. 희생은 그렇게 시작되었다—던져지는 사랑으로.

     

    파도 앞에 선 결단

    요나가 택한 단어, ‘던지다’. 그것은 하나님이 바다에 바람을 내리실 때 쓰신 바로 그 말이었다(4절)—히브리어 ‘헤틸’(הֵטִיל). 그는 알았다. 그 바람이 자신을 향한 것이었고, 그 바람이 닿은 자리에 자신이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하나님이 겨눈 자리로, 요나는 걸어갔다. 도망의 자리를 지나, 자신을 비워 넣는 자리로.  떠밀린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밀어 넣는 일이었다. 숨으려 했던 모든 시간에 이별을 고하듯, 바다를 향해 선 채 마음을 꺼냈다.  

    한밤중 궁정. 두 여인이 왕 앞에 섰다. 하나의 아이를 두고, 서로 자기 아이라며 울었다. 솔로몬이 입을 열었다. “아이를 둘로 나누어 반씩 주라.”(왕상 3:25) 그 말이 공간을 갈랐다. 한 여인이 무너진 숨으로 외쳤다. “그에게 주시고, 아무쪼록 죽이지 마옵소서.”(왕상 3:26) 그제야 다른 여인이 말했다. “내 것도, 네 것도 되지 말고 나누라.”(왕상 3:27) 그 순간, 진짜 어머니는 품을 비워 아이의 숨을 살리려 했고, 가짜 어머니는 칼을 택했다. 사랑은 놓았고, 증오는 나누려 했다. 숨을 잃지 않게 하기 위한 내려놓음—그것이 품의 시작이었다.  

    요나도 그 밤, 결단했다. 처음엔 ‘내가 안 되면 너도 안 돼’¹ 라며 반대편 배에 몸을 실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내가 던져져야, 모두가 산다.’ 그 말—"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에는 망설임도 없었다. 

    키에르케고르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려 한 희생을 ‘윤리를 넘어선 믿음의 도약’이라 불렀다.² 요나의 그 말도, 이성을 넘어서는 신뢰였고, 사랑을 향한 용기의 점프였다.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자신을 던지는—숭고한 방식이었다.

    그것은 끝이 아니었다. 요나는 그 순간, 도망치는 자에서 하나님의 뜻을 품은 예언자로 바뀌었다. 자신의 생을 건네 주며, 더 큰 생명의 문을 열었다. 겉으론 던져진 듯 보였지만, 실은 깊은 선택이었다. 그 고통은 심판이 아니라 건넴이었다. 사라진 자리에서, 생명이 피어났다.

     

    피어나는 믿음

    요나는 바다에 잠겼고, 배 위의 소란은 사라졌다. 실은, 흔들린 건 물이 아니라 마음이었다. “그 사람들이 여호와를 크게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제물을 드리고 서원을 하였더라.”(16절) 요나의 던져짐은 그들 마음 안에 낯선 빛을 비추었다. 그 빛 앞에서, 그들은 무릎을 꿇었다.

    에마뉘엘 레비나스는 진정한 윤리가 타자의 얼굴 앞에서 자신을 내어주는 응답이라 했다.³ 그것은 몸 전체로 드러나는 수락이었다. 요나는 던져졌고, 배 위의 마음은 흔들렸다. 두려움은 경외가 되었고, 경외는 기도로 피어났다.

    우리는 늘 누군가의 물러섬 위에 선다. 보이지 않는 어깨에 발을 딛고, 내밀어진 손끝에 숨을 얹는다. 이름 없이 감내한 이의 사랑이 바닥에 남아, 오늘의 우리가 그 위를 딛는다. 

    그 깊이를 아는 자만이, 자신을 접고 자리를 내어줄 수 있다. 먼저 짊어진 고통이 있었고, 그것을 알아본 이만이 또 다른 이를 위해 기꺼이 낮아질 수 있다. 희생은 그렇게 스며 흐르고, 우리는 그 위를 걷는다.

     

    나에게도 그런 희생이 있었다.

     기억은 오래된 물의 무늬처럼 남아 있다. 아버지는 어느 날, 아무 말 없이 사라졌다. 나는 두 동생과 함께 고아원에 보내졌다. 그곳은 요나가 던져진 바다 같았다. 거칠고 낯설고 차가운 풍랑 속, 방향도 잃은 채 흔들렸다. 

    그날 이후, 나는 습관처럼 되뇌었다. 아버지가 우리를 버린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희생한 것이라고. 믿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기에. 부재를 희생이라 여겨야만,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다. 그 믿음은 허약했지만, 내 생을 지탱해주는 지붕이었다.

    아버지 생신 의식을 한 장소가 왼쪽 건물 뒷편이다. (사진은 조원태 목사가 어렸을때 자란 고아원이다).아버지 생신 의식을 한 장소가 왼쪽 건물 뒷편이다. (사진은 조원태 목사가 어렸을때 자란 고아원이다).

    삼일절. 아버지의 생일이라 여겼던 날. 두 동생과 함께 고아원 뒤편에서 보물처럼 숨겨둔 초코파이에 초를 꽂고 불을 밝혔다. 아버지가 있을 거라 믿어진 방향을 향해 절을 올렸다. 이마가 흙에 닿도록, 그것은 아버지를 기억하는 희생 의식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은 살아남기 위한 나만의 방식이었다. 누군가는 그것을 비겁한 순응이라 할지 모르지만, 내게는 단단한 저항이었다. 나는 아버지의 떠남을, 나를 위해 어둠 속으로 내려간 희생으로 여겼다.

    그 믿음으로 나는 무너지지 않았고, 꿈을 붙잡았다. 나도 언젠가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내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누군가의 파도를 잠재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 던져짐 위에서 나는 자랐다. 받은 은혜는 건넬 사랑이 되었고, 버려짐은 누군가를 향한 내어줌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목사가 되었다.

    아버지의 떠남도, 요나의 던져짐도 어쩌면 마땅한 죄값이었다. 끊을 수 없는 체인처럼 반복되는 세상에서, 저주의 길을 희생이라 믿는 것—그것이 무너짐을 이겨내는 방식이었다. 

    희생은 우리를 가르친다. 누군가의 견딤만큼, 다른 누군가는 일어선다. 누군가가 내려앉은 자리에, 또 다른 이가 살아난다. 사랑은 자신을 비워 타인을 숨 쉬게 하는 일이다. 낮아진 자리에서 우리는 맑아지고, 더 인간다워진다.

    요나는 사라졌지만, 그 파문은 물 위에 남았다. 몸을 내어준 그 한 사람이, 닿지 않던 마음을 흔들었다. 바다에 떨어진 결단 하나가, 생명을 깨웠고 믿음을 일으켰다. 던져진 자리 위로, 기도가 솟아올랐다.

     

    최초의 예언⁴

    이 던져짐은 요나 한 사람의 일이 아니었다. 세상은 누군가를 던져야만 질서를 유지할 수 있다고 믿어왔다. 분열은 누군가의 등을 통해서만 봉합될 수 있었다. 인류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언제나 희생자를 골랐다.⁵ 연약한 이들은 질서를 위한 비용처럼 내던져졌다. 억울한 희생이 반복되는 곳에선 숨죽임이 규칙이 되었고, 그 침묵은 다시 폭력의 연료가 되어 다시 누군가를 불태웠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희생양의 질서를 뒤집으셨다. 그분은 무고한 이를 억지로 밀어넣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으로 구원을 여셨다. 요나의 던져짐은 단지 파도를 잠재운 사건이 아니라, 이미 오래전에 새겨진 복음의 예고였다.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마 12:41) 하나님은 요나의 희생을 통해 그리스도의 길을 미리 보여주고 계셨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

    예수는 더 낮은 곳으로 향했다. 높은 자리를 비워내고, 무거운 짐을 대신 졌다. 고개 숙인 이들의 자리에 함께 앉으셨고, 그들의 눈을 들게 하셨다. 그가 넘어진 자리에서 우리는 일어났고, 그가 침묵한 순간에 우리는 말을 찾았다. 그가 흘린 피 위에, 우리가 산다. 그것은 구원의 지도였다. 희생의 깊은 골짜기에서 시작해 은혜의 능선으로 이어지는 길.

    피 묻은 발자국이 남았다. 그 십자가의 발자국 위에, 요나가 선다. 흔들리고 망설였지만, 그는 생명을 향해 발을 내딛는다. 자신을 넘어서는 자리에, 그는 섰다. 요나의 그림자는 예수의 실루엣이 되었고, 한 사람의 결단은 한 시대를 흔들었다. 십자가의 무게가 그 결단을 완성했다.

    지금도 어떤 이들은 말없이 던져진다. 상처를 대신 지고, 무너진 도시를 위해 기울며, 믿음은, 그런 자리에 피어난다. 던져짐은 패배가 아니다. 그것은 사랑이 걷는 방식이자, 구원이 말하는 언어다. 아무도 보지 못해도, 그 희생은 세상의 숨을 지켜낸다.

    진정한 희생은 '내가 응답해야 할 대상 앞에 놓인 것'이며, 그것은 자신이 감내한 어둠 속에서도 타인을 위한 결단을 선택하는 일이다.⁶ 요나처럼, 자신을 내어주는 방식으로.

    요나의 던져짐은, 누군가를 대신하기 위해 스스로 자기를 내어주는 ‘대속의  모형’이 된다.⁷ 그의 몸짓은 단지 바다를 잔잔하게 만든 사건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예고하는 최초의 몸짓이었다. 하나님은 요나를 통해 그 길을 여셨고, 예수는 그 길 끝에서 자신을 던지셨다.

    희생은 허파와 같다. 드러나지 않지만 흐르고, 말해지지 않지만 지탱한다. 그것이 있을 때 우리는 살아 있고, 그것이 멈출 때 세상은 무너진다.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던져짐은 무엇일까. 우리가 내려놓아야 할 것은 무엇이며, 대신 져야 할 무게는 누구의 것인가. 우리가 스스로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갈 때, 어쩌면 그 순간 처음으로 세상의 파도가 멈출지도 모른다.

     

    물속에서

                                                                                                                          조원태

    사람 하나 

    물속으로 사라졌다

     

    파도가 멈추고

     

    기도 하나 

    피어 올랐다

     

    각주 ¹ 르네 지라르는 인간 갈등이 타인의 욕망을 모방하는 데서 비롯된다고 보았다(mimetic desire). 그는 집단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대체 희생을 설정하고 파괴하는 메커니즘이 작동한다고 말한다. 자끄 라캉 역시 '거울 단계' 이론에서, 주체가 타인의 욕망을 반사하며 자기 동일성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공격성과 배제가 나타나는 구조를 설명한다. René Girard, The Scapegoat, trans. Yvonne Freccero (The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1986), pp. 3–12. / Jacques Lacan, “The Mirror Stage as Formative of the I Function,” Écrits, trans. Bruce Fink (Norton, 2006), pp. 75–81. 

    ² Kierkegaard, Fear and Trembling, trans. Alastair Hannay (Penguin Books, 1985), pp. 66–70.

    ³ Emmanuel Levinas, Totality and Infinity, trans. Alphonso Lingis (Duquesne University Press, 1969), pp. 79–81.

    ⁴자끄 엘륄은 요나서를 ‘최초의 예언’, ‘두 번째 예언’, ‘세 번째 예언’으로 나누며, 이를 통해 요나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을 예고하는 인물로 그려진다고 본다.  Jacques Ellul, The Judgment of Jonah, trans. Geoffrey W. Bromiley (Wipf and Stock, 2020), p. 38. 

    ⁵ René Girard, The Scapegoat, trans. Yvonne Freccero (The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1986), pp. 3–12.

    ⁶ Jacques Derrida, The Gift of Death, trans. David Wills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5), pp. 50–53.

    ⁷ Timothy Keller, The Prodigal Prophet: Jonah and the Mystery of God's Mercy (Viking, 2018), pp. 60–61.